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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입사 1년이 다가온다. 이직을 여러 번 했고 이 곳은 n번째 회사이다. 회사는 킬링 비지니스가 명확하지만 오프라인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양화와 디지털에 목말라하고 있는 터이다. 현재 나는 회사에서 UIUX로 분류된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다.
2010년 중반 이후 UIUX디자이너라는 명칭이 유행하고 나서 그런 이름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내 직무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래에 소개할 현재 회사에서의 험란한 경험을 거치며 이제는 나도 내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디자이너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다.
[비지니스 조직에 뚝 떨어지다]
프로덕트디자이너와 디자이너는 무엇이 다를까. 나는 비즈니스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만드는 자(Maker)를 넘어서서 경영과 전략과 연결되어 뾰족한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데 함께 고민할 파트너가 되는 것이 기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그래서 사업조직에서의 생활은 한 번 쯤 해볼만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디자인 경력은 총 10년이지만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전향한지는 3년차고 현재 회사에는 신사업을 하는 부서로 입사했다. 회사의 인사 시스템에는 디자이너라는 포지션이 없어서 내 역할은 Marketing Analyst로 되어 있다. 조직은 디자이너를 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는 알지 못해 보였다. 그래서 내 스스로 내 역할을 확장하며 고군분투했다.
팀은 크게는 사업과 마케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보통 회사는 만드는 자(Maker)와 파는 자(Seller)로 나뉜다. 이해상충이 생기기 좋은 관계이다. 그동안 내게 사업팀은 막무가내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고 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예스맨처럼 받아오는 빌런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그들과 한솥밥 먹는 사업팀 사람이 된 것이다. 물론 우리 팀은 자체 사업을 구축하는 팀이라 남의 일을 해주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이 조직에서는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매출, 숫자, 돈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일간, 월간, 연간 실적이 취합되고 평가가 이루어진다. 디자이너로써는 고민해보지 못한 일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사업개발 조직은 실행 조직은 아니다보니 실행이 중요한 Maker로서는 환경적 심리적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런 어려움도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도 했다. 뭐든지 묵묵히 하다보면 해 볼만 하다는 용기도 얻었다.
[기획 조직에서의 자아성찰]
몇 달간의 사업부 생활을 뒤로 하고 데이터부서로 이동했다. 우리 팀은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가 모인 팀이다. 팀의 역할은 비즈니스와 IT를 연결하는 것이며 팀장님은 모든 팀원들이 기획자로 일해주길 주문했다. 이 취지에는 매우 동감한다. 모든 프로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구성된지 얼마되지 않았고 주어진 일을 쳐내는데 급급한 처지라 팀의 방향성을 잡고 만들어가는 것은 과제로 남아있다. 내가 뭘하는 사람인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서 주변에 조언을 구하니 이것이 프로덕트 디자이너(Product Designer, PD)라고 하더라.
PD에 대한 정의는 회사마다 모두 다른데 우리 회사는 그 때 그 때 각자가 회색지대를 커버하며 일을 한다. 전통적인 디자이너의 역할은 범위가 명확했다. 그러나 PD에게는 역할 범위란 것이 희미하다. 모든 걸 다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비단 현재 회사 뿐만 아니라 그동안 몸 담았던 조직에서는 아무도 이 문제를 명쾌하게 풀지 못했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이 딜레마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길지 않은 기간이나마 내가 경험하고 느낀 당부점을 정리해볼까 한다.
1)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PD의 업무로는 문서 작업과 비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비주얼의 최전선 작업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하게 되더라도 개인의 예술적 감수성을 충족시킬만큼 유려한 결과물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Behance 같이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얻지 못하면 망한 커리어라고 생각하는 디자이너들이 있는데 그러한 생각으로 PD가 된다면 괴리감이 클 것이다.
2) 많은 회사들이 PD가 무엇인지 모르고 뽑는다. 따라서 당신의 직업적 자아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PD는 애자일한 업무 환경에 맞춰 생겨난 개념이다. 흔히 애자일은 우월하고 워터폴은 평가절하하는 세태가 있지만 애자일과 워터폴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조직과 업무에 특성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워터폴이 적합한 회사들도 유행처럼 PD를 뽑는다. 회사는 PD를 채용했으니 하루 아침에 있어빌리티한 뭔가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프로덕트 디자인은 제반이 많이 필요하고 업무 형태도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회사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잘 세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이 자기가 뭘 산지도 모르고 사놓고 어떻게 쓸지를 몰라서 물건 탓을 한다. 이런 기업에 PD 입사하게 되면 '비싼 데 쓸모없는 물건'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멘탈케어를 하며 매일 자신을 증명하고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 해야 한다.
3) 디자인 바깥은 야생이다.
디자이너가 나도 비지니스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라고 선포하는 순간 야생에 떨궈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영진에게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숫자에 빠르고 화려한 언변과 보고 스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협상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을 세계관과 직업관을 깡그리 버리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자신에게 그런 소질과 의지가 있는지 냉정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혼란한 상황에서 스스로 어떻게 기준점을 잡는가가 스스로 짊어져야 할 무게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진짜 의미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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