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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인간이 가져야 할 보편적인 점 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보편적인 점이라 하면 사회성, 유연성 같은 것이다. 나 역시도 저 부분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최소 마지노선까지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들은 가장 수용적인 일을 하면서도 어떨 때는 가장 폐쇄적이다.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 외의 것은 간과하기 쉽다. 그래서 최근에 채용할 때 컬처핏(Fit)이라는 요소가 급부상한 게 아닐까.

 

학생 시절 알바부터 직장 생활까지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회사를 겪어보았다. 그 안에서 현재 네카라의 리드인 분도 만났고, 외부에선 주목받지 못하지만 재야의 고수같은 디자이너도 만났다. 대단한 회사에서 일한다고 모든 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고 그 반대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사소한 태도에서 그 사람의 진짜 퀄리티가 정해진 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게 10여 년의 경력기간은 일이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들의 자세를 통해서 배우고 성장한 시간이었다.

 

 

 

| 실패에서 배우다

 

나는 신입 시절 회사 생활에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일도 미숙했고 관계도 미숙했다. (3개월 밖에 안 다녀서 이력서에 적지는 않는다.) 회사는 신생 에이전시였지만 팀장들의 실력은 업계 최고 수준이었고 대기업 프로젝트도 잘 따와서 배울 게 많아 보였다. 그러나 체계가 엉망이고 입퇴사가 반복되었다. 월화수목금금금 철야가 반복되었고 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비정해지기로 마음 먹은 듯 했다. 이런 아비규환같은 냉정한 분위기에서 초년생은 버티기가 힘들었다.

 

당시 회사에 대한 불만과 사람에 대한 편견은 트라우마로 남아 수 년 넘게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3~4년 쯤 지나서 돌아보니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나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상식을 갖춘 회사와 동료들을 만났다. 조직과 구성원들의 장점을 배우려고 했다. 어려움이 생겼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하는지, 어떻게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고 밝은 태도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주로 살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런 역량을 갖춘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시켜도 잘한다" 라는 점을 정리한 요건이 아래와 같다.

 

 

 

|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역량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역량]

1. 책임감

2. 예의 있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3. 고집 부릴 때와 양보할 때를 알기
4.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기

5. 일과 감정, 공사 분리하기

 

본질은 유연성이다. 10 아니면 0이 아니다. 8 또는 3 이렇게 세분화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적군 아니면 아군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자신의 성장을 한정 짓는다.

 

상사나 기획자가 일을 이상하게 줘서 짜증이 나도 커피 한 잔하며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 꼬인 일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풀어낸 뒤에 협업자들과 신뢰와 라포(Rapport)를 쌓고 다음 업무에 윤활유로 바꾸는 태도랄까.

 

디자이너는 이해의 스펙트럼이 넓어야 한다. 디자이너는 다양한 요구사항을 듣고 수렴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줄도 알아야 하지만 때로는 한 발 물러서는 자세도 필요하다. 현실에선 흑과 백보다는 그 사이의 회색지대가 훨씬 넓게 펼쳐져 있다. 회색지대에서는 맞다 틀리다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세밀하게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상황이 불만족스러울 때 누가 내 맘을 알아주길,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려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현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생각해서 키를 쥔 사람에게 문을 두드리고 액션을 취해야 한다.

 

 

[디자이너를 하면 고통받을 사람]

1. 환경 탓, 사람 탓만 함

2.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

3. 대안에 냉소적이고 이행할 의욕이 없음

4. 흥선대원군도 울고 갈 강경함

5. 다른 세계관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 못함 (don't과 can't 모두 포함)

6. 떠나지 않고 1~6를 반복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이 일이 맞지 않다.

 

경력이 쌓일수록 능력보다 태도가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포트폴리오 하나 채우는 것보다 성실함, 유연함, 메타인지는 어떤 직업을 갖든 갖춰야 할 기본기이다. 한 번 잘 쌓아놓은 태도는 평생 자산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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