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책은 월스트리트 헤지펀드 트레이더 출신인 '뉴욕주민' 의 에세이 같은 책이다. 저자는 민족사관학교를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 조기 졸업, 매킨지를 거쳐 JP모건, 씨티그룹과 헤지펀드 운용사에서 근무해왔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저자가 아주 당차다는 점이다. 그녀는 150cm 밖에 안 되는 체구 작은 동양 여성으로 비백인, 비남성이라는 핸디캡을 노력으로 뚫으며 월스트리스트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뉴욕 악센트로 빠르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는 그녀는 어디서든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현다.

 

시원시원한 일화들에서 그녀의 자신만만한 성격과 더불어 투자의 세계에서 겪은 실패를 통한 교훈과 겸손한 삶의 태도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어려운 투자용어도 많이 나오지만 자세한 각주가 달려있고 전개가 스펙타클해서 흥미진진하게 술술 읽혔다.

 

 

 

| 매킨지에서 헤지펀드까지

그녀의 꿈은 월스트리트에 입성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흙수저라 소개하는 그녀는 민사고 졸업 후 '월스트리트 사관학교' 라고 불리우는 와튼스쿨에 진학한다. 졸업 직전에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지고 대형 투자은행에 합격을 내정받았던 선배들이 취업시장에서 고배를 마시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졸업 후 울며 겨자먹기로 경영컨설팅에 문을 두드리고 매킨지에 입사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기업가치를 계산하고 투자의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쏠려있었고, 회사 내부자에게 경영 컨설팅을 제안 업무에는 흥미를 붙일 수 없었다.

 

뱅커가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커리어를 백지로 돌리고 꿈에 그리던 투자은행에 입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경쟁률이 세고 브레인만 모인다는 M&A파트에서 지원해서 우여곡절 끝에 합류한다.

 

"누가 마우스를 써! 이것도 못해? 니가 컨설턴트야 뭐야?"

 

입사 첫날, 엑셀 모델링을 제대로 못 한다며 상사가 직접 자리로 와서 마우스 뽑으며 한 말이다. 나중에 "응 나 컨설턴트 출신이야."라고 했더니 사과했다고는 한다. 이걸 보면 뉴욕 엘리트 집단의 위계구도가 어떠한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뱅커들은 컨설턴트는 아래로 본다는 점이 그사세 같아서 신선했다. 책에서도 잊을만하면 매킨지에 대한 불만(이랄까 나는 매킨지에 안 맞다라는 점)을 대놓고 드러내는데 흥미롭다.

 


 

어렵게 입사한 투자은행에서 뱅커로의 삶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또 다시 치열하게 도전해서 뱅커들에게도 구름 위의 존재인 헤지펀드사에 도전한다. 헤지펀드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위험을 헷지하고 상승장이든 하락장이든항상 시장보다 +a의 수익을 달성하는 투자를 말한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의 절대 갑이자 정점으로 불리운다.

 

면접에서 대놓고 "근거가 빈약하다, 이럴 거면 리포트를 보지, 왜 너를 비싼 돈 주고 쓰냐" 는 등의 온갖 압박면접을 버티며 꿈에 그리던 헤지펀드사에 입사한다. (책에 묘사된 그녀가 겪은 월스트리트 면접은 대개 이렇게 혹독하다.) 동기 개념과 팀 문화란게 있는 투자은행과 달리 헤지펀드사는 각개전투로 싸워야 하는 정글인데 그럼에도 좋은 동료들을 만나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 타고난 자가 즐기고 노력도 하는 월가 사람들

월스트리트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의 축으로 묘사된다. 손익 계산이 빠르고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저자도 인정하지만 거기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이전의 커리어를 버리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진출한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동료도 많았고, 네트워킹이 조금 빡세긴 하나, 내 사람과는 큰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한다.

 

월가의 헤지펀드 트레이더들은 그야말로 덕업일치한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집안, 학벌, 재능, 운도 있지만 노력까지 한다. 워라밸이란 말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삶과 투자가 혼연일체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 트레이더는 결혼식 당일날 신랑 입장 때까지도 핸드폰으로 투자 화면을 보고 있어서 베스트맨(신랑도우미)이 핸드폰을 뺏어버렸고, 신혼여행을 가서도 주식장만 보고 있어서 신부와 싸우고 이틀 만에 돌아와서도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괴물들 사이에서 그녀가 움직일 수 있는 변수는 노력 밖에 없었고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고 밤 11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덕업일치를 한 사람 중 하나이고 투자 성공담과 뼈아픈 실패담을 여과없이 담아내며 월스트리트에서의 삶과 투자에 대한 애정을 책에 그렸다.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월스트리트를 떠나는 이유와 머무는 이유>에 대한 장에서 "큰 돈을 벌어봤기 때문에 돈에 무뎌지고 그래서 돈을 초월해 순수하게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어한다" 는 경지에 이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모른다'는 것에 대해 매우 투명하게 인정하고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이들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상태로 두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한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 관련한 무언가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게 될 때까지 파고든다.

 

뭐든 한 분야에 미치고 통달하려면 갖춰야 할 태도는 다 같은 것 같다.

 

 

 

| 예측불가능한 투자의 세계에 '사람' 은 정말 필요할까

전문가도 틀린다. 계산이나 분석이 틀리는 경우는 없지만 "나는 틀리지 않았다" 라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아무리 유능한 트레이더라도 투자에 실패한다. 그리고 밸류트랩에 빠져서 가치는 좋을지언정 시장에서 소외 받아서 주가가 오르지 못하는 종목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실패한다.

 

시장은 펀더멘탈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펀더멘탈에 모멘텀, 상승장의 광기와 하락장의 공포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심리가 주가를 형성한다. 따라서 저자는 "나는 틀리지 않았다" 라는 아집을 버리고 "시장은 틀리지 않았다" 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측은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투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이 책을 통해서도 풀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반인의 두뇌로는 따라갈 수 없는 분석력과 직감, 수 천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읽고 현장을 발로 뛰는 집요함, 대수의 법칙에서의 승률은 전문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설득이 되었다.


 

AI가 사람을 대체하고 월스트리트도 인원감축이 되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수익률이 아니라 "내가 맞았어"를 확인받는 기쁨, 도박과 한 끝차이 같은 희열감, 그리고 사람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내는 스토리를 좋아하는게 아닐까.

 

사람들은 연예계든, 스포츠든, 정치계든 팩트 자체보다 거기서 탄생한 밈을 좋아하고 비극도 희극으로 바꾸며 즐긴다. 흔히 이걸 풍자와 해학이라고 하는데 이건 인간의 본능이다. 투자의 세계에서도 풍자와 해학은 대단하다. 인터넷 밈으로 시작해서 몇일만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화폐가 된 도지코인, 그리고 '호구' 라는 말이 금지되어서 '흑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켜 검은소 사진으로 남들을 놀리고 다니는 인간의 광기(...)를 AI가 어떻게 충족시켜줄까 싶다.

 

어떤 이들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컴퓨터는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람은 정서적 교감을 원한다. 사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고 단언한다.

 

 


 

 

투자공부서 보다가 지긋지긋할 때 (솔직히 나도 투자 관련 책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머리 식히는 겸으로 읽어봄직하다. 흥미로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인생을 엿본다는 건 일종의 관음증 같다. 그녀의 삶은 나한테 다른 나라 일 같으면서도 평범한 인간처럼 장애물 하나를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모습을 보며 내 인생에도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